‘100억대’ 초고가 오피스텔, ‘승자의 저주’ 작용하나
[얼음장 수익형부동산] ② 비싼 땅값에 타산 안 맞는 하이앤드 상품
헐값 매각도 어려워…시행사에 부담
[이코노미스트 민보름 기자] ‘하이엔드(High-end)’ 상표를 내걸고 강남권에서 돌풍을 일으키던 고급 오피스텔 사업이 최근 들어 급격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몇 년간 토지비와 공사비가 오른 데다 금리인상으로 금융비용 역시 급등했기 때문이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수요는 예전 같지 않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시장을 지배하던 하이앤드 상품은 이제 불황기에 통하는 ‘실속형 상품’에 자리를 내주는 중이다.
이 같은 현상은 지난 13일 ‘루시아 청담 514 더 테라스(이하 루시아 청담 더테라스)’ 부지와 건축 인허가권이 공매에 나오면서 표면화됐다. “요즘 잘 나가던 고급 오피스텔 사업이 위기”라며 시장에 떠돌던 이야기가 실질적인 우려로 옮아간 계기가 된 셈이다.
루시아 청담 더 테라스 사업은 토지 매입과정에서 일으킨 브릿지론이 본격적인 부동산 개발을 위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전환되지 않으면서 벽에 부딪혔다. 지난해 12월 메리츠화재 등 대주단은 루시아홀딩스에 기한이익상실(EOD)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과 6개월에서 1년 전까지만 해도 선망의 대상이던 하이앤드 부동산 사업이 위기를 극복하고 쌓아온 브랜드를 이어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루시아 청담' 2개 단지, 6개월 사이 명암 갈려
강남에서 ‘루시아(LUXIA)’ 브랜드가 처음 알려진 계기는 2021년 ‘루시아 도산208’이라는 주상복합이 분양에 성공하면서 부터다. 단지명 그대로 도산대로변에 위치한 강남구 논현동 소재 ‘루시아 도산 208’은 도시형생활주택과 오피스텔로 공급돼 2개월 만에 분양이 완료됐다. 당시 호텔식 컨시어지 서비스와 커뮤니티 시설, 고급 내장재 마감으로 주목 받았던 루시아 도산은 ‘르피에드’, ‘PH129’ 등 당시 강남에서 흥행한 하이앤드 주거상품의 공식을 그대로 따랐다. 원룸 형태로 공간을 잘게 쪼개 세대 수를 늘리고 1~2층에 상가를 분양하는 기존의 전형적인 오피스텔 사업 방식과는 달랐다.
루시아홀딩스는 더욱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갔다. 지난해 분양한 ‘루시아 청담 546 더 리버(이하 루시아 청담 더 리버)’는 더루시아청담이 2021년 6월 청담동 53-5번지 토지와 건물을 나자인으로부터 약 700억원에 매입해 추진한 사업이다. 이 건물은 ‘청담동 주식부자’로 유명세를 탔던 이희진의 동생 이희문 명의였던 미래투자파트너스가 보유했던 부동산이다.
루시아 청담 더 리버는 지난해 5월 시장에 나와 결과적으로 분양완료에 성공했다. 시공사인 (주)대림 관계자는 “이 사업은 성공적으로 분양을 마친 뒤 공사 중”이라면서 “공정률은 3% 정도로 현재 지반작업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 루시아 청담 더 리버가 ‘루시아 청담 1차’격이라면 이번에 공매에 나온 루시아 청담 더 테라스가 ‘루시아 청담 2차’격이라 할 수 있다. 두 사업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시공사의 ‘책임준공 확약’ 여부다. 루시아 청담 더 리버 역시 자금조달 과정에서 부침이 있었지만 1군 건설사인 DL이앤씨의 그룹사인 (주)대림이 책임준공확약을 하면서 PF 대출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이와 달리 루시아 청담 더 테라스 사업의 경우 시공사가 확정되지 못한 점이 이번 공매가 진행된 결정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현재 루시아홀딩스는 사업정상화를 위해 공매 취하와 동시에 시공사 선정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루시아홀딩스 관계자는 “PF와 관련된 계약은 메리츠증권과 이미 체결된 상태이며 시공사 역시 곧 선정될 예정으로 우선협상대상자와 협상 중”이라면서 “대주단과 대화를 통해 공매를 빠른 시일 내에 취하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신탁회사가 매각을 목적으로 내놓는 공매는 언제든 취하가 가능하다.
1000억원 단위 사업, 나설 사람 있을까
일각에선 루시아홀딩스가 PF대출 전환에 실패하더라도 당장 이 부지의 새로운 주인을 찾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땅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사업을 수탁한 대한토지신탁에 의해 공매에 나온 루시아 청담 더 테라스 부지와 사업권의 최저입찰가는 2263억원으로 토지 감정가만 2100억원이 넘는다. 이에 대해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이미 건축 인허가를 받은 부지를 사업권과 함께 내놓는다는 것은 이 사업을 할 만한 시행자를 찾는다는 의미인데 요즘 2000억원짜리 사업을 인수할 곳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고급 오피스텔은 타산이 맞지 않는 사업이 되고 있다. 비싼 땅값에 그동안 오른 공사비를 감안하면 분양가를 대폭 올려야 하지만 부동산 수요는 식어버린 상태다. 루시아 청담 더 테라스의 경우도 이미 분양가 100억원이 넘었던 루시아 청담 더 리버보다 공급가격이 높을 가능성이 크다고 알려져 있다. 시공사들은 이 사업과 공사 조건이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고급 오피스텔 사업 자체를 피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수요자가 있다면 (시공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부동산 호황기에 비싸게 사들인 오피스텔 부지는 강남 번화가 부지를 다수 사들인 몇몇 시행사에게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루시아홀딩스 역시 지난해 논현동 소재 DMCC빌딩과 지안빌딩을 대명스테이션으로부터 약 1600억원에 추가로 매입하기도 했다. 2020년 대명스테이션이 이들 빌딩을 매수할 당시 금액은 총 975억원이었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지난 2년 사이 고급 오피스텔 시행사들이 경쟁적으로 높은 가격에 부지를 사들인 데다 금융비용과 각종 사업비까지 눈덩이처럼 불어 사정이 나빠도 땅을 헐값에 내놓기 어려울 것”이라며 “땅 자체는 워낙 입지가 좋아 다들 관심은 있지만 당장 매수하려는 사람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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