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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N잡러’로 살아남는 법 [스페셜리스트 뷰]

전문가 칼럼

"한 곳에서 한 분야에 깊이 몰입해 전문가가 되어라." 이 공식은 오랫동안 성공의 정의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기술적·사회적·문화적 대전환 속에서 이 정의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한 가지 역할이나 정체성에 머무르기보다 다양한 전문성과 경험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특히 이직의 유연화가 진행되면서 N잡러·프리랜서·솔로프리너(Solo와 기업가라는 Entrepreneur의 합성어로 1인 기업가를 뜻함)가 부상하고 있다. 오늘날 경력 관리의 주요 키워드로 떠올랐다. 그 중심에는 퍼스널 브랜딩이 있다.잡코리아의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95.3%가 커리어 브랜딩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68.8%는 이를 실천하거나 계획 중이라고 답했다. 이는 이직을 할 때 ▲포트폴리오 작성 ▲개인 성장 기록 ▲1인 브랜드 구축 등과 같은 실질적인 게 필요하다는 말이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직장인의 42.5%가 부업이나 N잡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대비 25% 이상 증가한 수치다. 이 변화는 개인의 전문성이 회사 내부를 넘어 다양한 플랫폼에서 발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양한 경험의 가치와 전문성의 확장나는 마케팅과 브랜딩 전문가로서 지난 15년간 대기업·글로벌 기업·스타트업 등 총 7번의 이직을 경험했다. 이는 더 다양한 산업과 환경을 직접 체험하며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선택이다. 이직을 통해 배운 게 많다. 대기업의 체계적인 시스템에서 시장의 구조와 전략적 사고를 배웠다. 글로벌 기업에서는 문화적 다양성과 혁신적인 접근 방식을 익힐 수 있었다. 스타트업에서는 민첩성과 창의성, 그리고 자원 부족 속에서도 성과를 창출하는 실행력을 키웠다. 이처럼 다양한 경험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나의 ‘퍼스널 브랜딩’의 기초가 됐다. 어렸을 때부터 너무 좋아서 포기하지 않고 했던 활동이 밴드다. 보컬로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기존의 강연자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말하는 스피커라는 고유성까지 얻을 수 있었다. 더 나은 성장을 위해 이직에 대한 도전과 밴드 활동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나만의 고유한 ‘퍼스널 브랜딩’의 기초가 됐다. 한국을 대표하는 마케팅 및 경영 컨퍼런스에서 전문가 강연을 하며, 최고의 기업과 단체를 상대로 브랜드 강연 및 워크샵을 진행했다. 업계 최고라고 불리우는 교육 플랫폼과 마케팅 강의를 촬영하며, 단행본 출간 계약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퍼스널 브랜딩…새로운 시대의 필수 역량한국은 이제 선진국으로 자리 잡았고, 과거 생존 중심의 경제적 니즈를 넘어 자아 실현과 개인의 성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이 제공하는 무한한 기회 속에서 퍼스널 브랜딩은 자신을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강력한 도구로 자리 잡았다. 디지털 시대에서 개인의 전문성은 더 이상 회사 내부에 국한되지 않는다. 퍼스널 브랜딩의 핵심은 자기 스스로가 미디어 (Owned media)가 되고, 그것을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통해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자신만의 브랜드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성공적인 MZ세대들의 공통점은 자신만의 차별화된 브랜드 구축에 투자한다는 것이다. 퍼스널 브랜딩은 단순한 자기 홍보를 넘어 각 경험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독특한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이다. 디지털 시대의 개인은 스스로가 미디어가 되어 소셜 미디어와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브랜드를 구축하고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 현재 일자리 시장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인공지능(AI)와 자동화 기술의 발전은 전통적인 고용 시장을 크게 위축시키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앤컴퍼니의 분석에 따르면 2030년까지 전 세계 노동자의 약 30%가 AI와 자동화로 인해 직업 전환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업무는 AI가 대체할 가능성이 높아, 많은 중간층 일자리가 사라질 위험에 처해있다.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AI가 역설적으로 1인 기업가와 프리워커의 성장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AI 기술은 개인의 업무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과거 여러 명이 해야 했던 일을 혼자서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AI 도구를 활용하면 콘텐츠 제작과 마케팅 그리고 고객 서비스 등 다양한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이는 진입 장벽을 낮추고 1인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면서 이직은 이제 자연스러운 경력 관리의 일부가 됐다.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직장인들은 더 나은 성장 기회와 ‘워라밸’을 찾아 이직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들은 회사와의 관계를 단순한 소속감이나 충성심이 아닌 철저한 거래 관계로 인식한다. 회사가 제공하는 성장 기회와 가치를 자신이 투자하는 시간과 역량의 대가로 평가한다. 이러한 이직 유연성의 확대는 ▲경력 개발의 다변화 ▲산업 구조의 빠른 변화 그리고 원격 근무와 같은 ▲유연한 근무 환경의 확대에서 비롯된다. 결과적으로 MZ세대는 더 이상 한 회사에서의 안정성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다양한 경험과 지속적인 성장 기회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다. 또한 최근 많은 사람들이 한 직업에만 의존하지 않고 여러 직업이나 활동을 병행하는 N잡러로 전환하고 있다. MZ세대의 68%가 2년 내 이직을 고려하고 있고 45%는 부업이나 프리랜서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고용 불안의 시대…퍼스널 브랜딩은 필수디지털 기술과 플랫폼 경제의 발전은 솔로프리너의 성장을 가속화하고 있다. 초기 자본 없이도 자신의 브랜드를 구축하고 수익을 창출할 기회가 확대됐고, 이는 창의적이고 독립적인 경력 설계를 가능하게 한다. 나 역시 강연·강의·컨설팅·코칭을 병행하며 다양한 경험을 얻고 있고, 이것을 하나의 전문성으로 결합했다. 이는 내가 가진 독특한 경험들이 만든 차별화된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고용 안정성이 약화된 시대에서 퍼스널 브랜딩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개인은 자신만의 브랜드를 통해 경제적 자립과 커리어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지속적인 학습 ▲네트워크 확장 ▲자신만의 콘텐츠를 체계화해 브랜드 자산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성공적인 퍼스널 브랜딩을 하려면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먼저 자신만의 전문 영역을 명확히 정의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직무나 스킬이 아닌,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과 문제 해결 방식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마케팅 전문가라도 'AI 시대의 브랜드 혁신 전략가'와 같이 구체적인 포지셔닝이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나만의 브랜드 스토리텔링을 개발하고 그 스토리를 지속적으로 포기하지 않고 이야기해야 한다. 과거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지금, 기업들은 새로운 형태의 직원 로열티를 구축해야 한다. 여러 기업들과 협업을 하면서 발견한 것은 직원들의 개인 브랜드 성장을 돕는 것이 오히려 더 강력한 로열티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성공적인 기업들은 직원들의 N잡과 부업을 제한하기보다,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이를 회사의 혁신 동력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직원들의 외부 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발굴하거나, 다양한 산업의 인사이트를 내부로 가져올 수 있다. 이는 회사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한 IT기업은 직원들의 외부 강연과 저술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를 통해 얻은 인사이트를 사내에 공유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이 회사는 업계에서 가장 낮은 이직률을 보이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기업의 새로운 리텐션 전략의 핵심 요소는 다음과 같다. 먼저 개인의 성장이 곧 회사의 성장이라는 철학이 필요하다. 직원들의 외부 활동을 통해 얻는 경험과 네트워크는 결국 기업의 자산이 된다. 내가 컨설팅했던 기업들 중 직원들의 개인 브랜딩을 지원하는 회사들이 더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했다. 기업은 임직원의 경력 개발의 개념을 확장해야 한다. 수직적 승진 외에도 ▲다양한 프로젝트 경험 ▲전문 분야 확장 ▲외부 활동 기회 등을 제공해야 한다. 이를 통해 직원들이 회사 안에서도 다양한 성장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한 글로벌 기업은 '내부 프리랜서 제도'를 도입해, 직원들이 다른 부서의 프로젝트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게 했다. 이를 통해 이직률을 낮출 수 있었다. 또한 기업은 새로운 교육과 개발 계획을 도입해야 한다. 원론적인 교육을 넘어 본질과 현상을 동시에 다루는 미래 지향적 접근이 필요하다. 기업들도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인재 육성 전략을 혁신해야 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인재 생태계' 구축이다. 정규직 외에도 프리랜서, 파트타임, 프로젝트 기반 협업자 등 다양한 형태의 인재들과 유연하게 협력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AI 시대에는 오히려 이러한 유연한 협업 모델이 기업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마지막으로 미래 지향적 조직문화를 구축하고 싶은 기업은 '평생 직원'이 아닌 '평생 파트너'를 육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더라도 협력할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전직 직원들과 네트워크를 적극 관리하며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고 있다.결론적으로 이직의 유연화, N잡, 솔로프리너 퍼스널 브랜딩 시대의 직원 로열티는 통제가 아닌 자율성에서, 제한이 아닌 지원에서 나온다. 직원들의 다양한 활동을 인정하고 지원하는 기업만이 진정한 의미의 직원 로열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이직률 관리 그 이상으로, 기업의 지속적인 혁신과 성장을 위한 필수 미래 전략이다. 필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마케팅 전문가이자 브랜드 전략가다. 이케아 코리아·카카오 모빌리티·쿠팡· GM한국사업장·인생네컷 등 다양한 기업과 스타트업에서 최고마케팅책임자(CMO) 및 브랜드 디렉터로 근무하며 브랜드 성장과 혁신을 이끌었다. 현재는 강연과 워크숍·컨설팅·리더십 코칭 등을 통해 기업과 개인의 성장을 돕고 있다. 현재 25년차 하드코어 펑크 밴드 '더 긱스'의 보컬이자 리더로서 활동하고 있다.

2025.02.03 06:00

7분 소요
'통상임금' 두고 11년 만에 대법원 판결 바뀐 이유[공정훈의 공정노무]

전문가 칼럼

지난해 12월 1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대법원 2024. 12. 19. 선고 2020다247190, 2023다302838 전원합의체 판결)는 대법관 전원일치로 통상임금의 개념과 판단 기준을 재정립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이른바 ▲재직자 조건부 ▲근무일수 조건부 임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일반적인 근로자나 사업주가 이해를 할 수 있도록 통상임금의 의의와 기능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고 ▲재직자 조건부 ▲근무일수 조건부 임금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아보고자 한다.통상임금의 의의와 기능은?근로기준법 시행령 제6조 제1항에서 통상임금이란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하여 지급하기로 정한 시간급 금액, 일급 금액, 주급 금액, 월급 금액 또는 도급 금액을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쉽게 말해 노ㆍ사간에 근무하기로 약정한 소정근로시간만 근로해도 정기적으로 모든 근로자에 지급하거나 일정 기준을 충족한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임금을 통상임금이라고 한다.통상임금은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미사용 연차수당, 해고예고수당, 휴업수당 등 각 종 수당을 산정하기 위한 기준 임금으로 기능하므로 통상임금 변동은 노ㆍ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하다.이와 관련 지난 2013년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89399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지급되는 임금의 경우 통상임금으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예를 들어 ▲재직자 조건부 상여금과 같이 ‘지급일 당시에 재직하고 있어야 상여금을 지급한다’ 와 같은 추가 조건이 부가되어 있으면 해당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았다. 이전에 근로하였는지 여부를 따지지 않고 상여금을 지급하는 날에만 근무하면 지급하는 것이므로 이와 같은 조건부 상여금은 소정근로에 대한 대가성을 가진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일정 근무일수를 채워야 하는 이른바 ▲근무 일수 조건부 임금의 경우에도 통상임금으로 산정되는 연장근로를 제공하기 이전에 그 근무 일수 충족 여부가 미리 확정되지 않으므로 연장근로수당 산정 기준인 통상임금이 될 수 없다며 인정하지 않았다.하지만 최근 대법원은 변화된 입장을 보였다. 지난해 12월 19일 변경된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위와 같은 조건부 상여금, 근무일수 조건부 임금도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즉, 소정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하면 그 대가로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하도록 정해진 임금은 그에 부가된 조건의 존부나 성취 가능성과 상관없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재직자 조건부 상여금의 경우 소정근로를 제공하였음에도 지급일 당시에 재직하지 않았다는 사정으로 소정근로 대가성과 통상임금성이 인정되지 않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근무일수 조건부 임금도 그 조건이 소정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하는 근로자라면 추가 조건이 부가되어 있다는 사정만으로 통상임금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불합리하다. 결국 성과와 관련 없는 추가 조건을 통해 지급여부를 결정하는 임금은 앞으로 소정근로만 하면 모두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는 취지이다. 다만 근로자의 근무 실적에 따라 지급되는 성과급은 여전히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 소정근로를 제공하고 추가적으로 일정한 업무성과나 평가결과를 달성해야만 지급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통상임금의 범위 확대로 근로자는 그 동안 통상임금에 해당되지 않았던 ▲재직자 조건부 상여금 ▲근무일수 조건부 임금도 앞으로는 통상임금에 포함되므로 통상임금으로 산정되는 각 종 수당의 증대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 사용자에게는 추가되는 인건비 부담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실제로 기업 현장에는 수많은 근로자가 있으므로 인건비 부담 측면에서 기업에게 미칠 파급력은 매우 클 것이다. 변경된 대법원 판례도 이와 같은 파장을 의식하여 “변경되는 판례에 대한 신뢰보호의 필요성이 새로운 판례의 소급적 관철 필요성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극히 예외적인 경우”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새로운 통상임금 판단에 관한 법리는 이 판결 선고일 이후의 통상임금 산정부터 적용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사업주들의 면밀한 노무관리가 더욱 필요해진 시점이다.공정훈 노무법인 수 서울(광명)지사 대표 노무사(cpla1220@다음)

2025.01.28 09:50

3분 소요
속도의 역설…빠른 열차·멀어진 역[김현아의 시티라이브]

정책이슈

최근 개통된 GTX-A 노선은 수도권의 교통체계를 혁신적으로 변화시킬 초고속 광역철도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실제 열차 이동 시간 이외에 소요되는 역까지의 접근성, 환승저항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 파주 운정에서 강남 삼성역까지 20분대에 도착하는데 열차를 타기 위한 전후 활동의 시간들은 여전하거나 오히려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대심도 철도의 접근과 환승 저항 평가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대심도 철도의 접근 저항(철도를 이용하기 위해 역에 도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적, 물리적 노력과 심리적 부담)은 평균 차내 시간의 5.18배까지 길어질 수 있다고 하니 예견된 문제점이기도 하다. 환승 저항(한 교통수단에서 다른 교통수단으로 갈아탈 때 발생하는 불편함과 부담)도 차내시간의 1.01배 정도이니 접근과 환승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에게 최첨단의 고속철도는 그저 ‘빛좋은 개살구’에 그칠지도 모를 일이다. 원래 철도는 자동차와는 달리 문전 서비스(door to door)가 어렵기 때문에 출발지에서 역까지의 접근성과 다른 철도노선과의 환승 편의성이 매우 중요하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는 속도 향상을 위한 선택이기도 하지만 건설기간 단축과 토지보상비를 최소화하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대심도 지하공간에 건설되고 있다. 따라서 접근 저항(집에서 역까지, 역입구에서 개찰구를 거처 탑승플랫폼까지)이 해결되지 않으면 원래의 의도와 목표달성에 차질이 예상된다. 정치나 정책 일선에서 일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 집 앞에 (고속)철도 역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다. 원래 철도나 도로의 노선은 자연 지형과 공사 여건, 비용과 안전 문제 등을 고려한 최적의 노선으로 결정해야 하지만 이런 주민들의 요구로 종종 우회·연장되기도 한다. 나 역시 모든 사람이 집 앞에 역을 만들어 달라는 주장을 ‘지역이기주의’로 평가한 적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좀 생각이 달라졌다. 이는 주요 교통수단으로의 접근성 개선에 게으른 정치가 만들어낸 ‘절규’다. 경기도는 이제 인구 1400만 명에 근접하며 거대해지고 있지만 곳곳이 대중교통에서 소외된 ‘교통섬’이 되고 있다. 철도, 버스든 뭐라도 연결해달라는 “뭐라도 마을”로 명명되는 곳들 역시 적지 않다. 이들의 외침은 절규에 가깝다. 아무리 기다려도 다른 거점역과 연결해주지 않으니 내 집 앞으로 철도노선을 끌어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현실에서 보기 힘든 인터모달리즘(Intermodalism) 원칙교통공학·교통계획을 다루는 교과서에서는 교통계획을 수립할 때 인터모달리즘 추구를 기본으로 삼고 있다. 인터모달리즘이란 다양한 교통수단(도로·철도·해운·항공 등)을 효율적으로 연계해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화물이나 사람을 중단 없이 이동시키는 통합 교통 운영체계를 의미한다. 이는 교통수단의 효율성을 높여 ▲비용절감 ▲시간단축 ▲안전성 향상 등을 목표로 하며 나아가 환경친화적이고 경제적인 운송방식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철도정책에서는 철도와 다른 교통수단과의 연계가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원칙은 철도를 처음 건설할때부터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한 장기 교통계획을 수립한다. 문제는 특별법(택지개발특별법 등)으로 그때 그때 수립되는 대규모 주택단지개발이다. 당초 계획에 없던 대규모 주택단지가 개발 되면 철도나 교통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하다. 또 대규모 주택단지 개발로 야기되는 교통문제에 대한 대책을 우선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거꾸로다. 집부터 짓고 교통문제는 나중이다. 과거 나라살림이 팍팍했을 때에는 택지개발을 통한 개발이익으로 교통시설투자를 했으니 어느정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이런 방식으로 개발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교통시설 확보는 늘 후순위다. 집부터 짓고 보자는 식이다.3기 신도시가 계획되면서 GTX 역이 추가됐다. 고속열차는 안전성 확보와 속도 유지를 위해 직선화가 필수적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신도시 개발이 발표될 때마다 노선이 추가되고 우회하느라 당초 직선화 노선이 조금씩 수정되고 있다. 이런 저런 이유로 GTX 건설 기간이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막상 개통이 되면 환승시설이나 시스템은 그때부터 마련한다고 분주하다. 기나긴 건설 기간에 과연 일선 행정부나 정치인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싶다.복합환승시스템을 갖춘 스마트역세권 개발 시급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기존 지하철 역사에도 엘리베이터 탑승 수요가 늘어났다. 지상 역입구에는 계단 대신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는 공사가 전국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철도의 속도뿐만 아니라 철도이용을 위한 접근 속도와 편리성을 제고하려는 노력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보면 엘리베이터는 협소하고 에스컬레이터 설치는 여전히 느리다. 신도림역이나 대곡역의 경우 여러 지하철 노선이 정차하는 환승역인데도 불구하고 역사와 플랫폼 공간이 비좁다. 이는 이용자를 불편하게 하고 안전까지도 위협한다. 이제 철도정책은 새로운 노선보다 기존 노선의 효율성을 높이고 접근성과 환승 저항을 낮추는 운영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낡은 역사를 스마트하게 바꾸는 ‘역사 재건축’이 필요하다. 여기서 역사 재건축이란 단지 낡은 역을 넓히고 새로 짓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역사를 재건축한다는 것은 기존 승객의 이동 패턴을 분석해서 동선을 단순·최적화해 혼잡을 줄이는 설계가 필요하다. 디지털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고 있는 요즘 시대 흐름에 맞춰 인공지능(AI)와 사물인터넷(Iot)를 활용할 수 있다. 역내 혼잡도를 관리하고 승객들에게 최적의 동선을 제안하는 스마트역 시스템의 구축도 포함된다. 특히 수도권 30분 출퇴근 시대를 여는 GTX개통에 맞춰 GTX의 거점역부터 시작해보면 좋겠다. 그래서 앞으로 개통되는 GTX는 개통되자마자 30분 출퇴근시대를 바로 체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GTX-A 노선의 삼성역 개통이 늦어진 것 매우 아쉽지만 스마트역으로의 준비를 위한 시간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바로 준비해야 한다. ‘빛좋은 개살구’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2025.01.26 07:00

4분 소요
‘스무고개 놀이’처럼 나오는 ‘트럼프 관세’…한국 공격 배제 못해[특파원리포트]

국제 이슈

이데일리 미국과 중국 특파원이 현지에서 보고 느낀 생생한 경제·산업 분야의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한다. “예측하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여전히 가늠할 수 없다. 당분간 그의 발언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미국 뉴욕의 국내 대기업 해외법인 관계자는 20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 취임에 대해 “불확실성이 가장 큰 리스크”라고 입을 모았다. 기업들은 1기 행정부를 겪으며 그의 스타일에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2기 임기 첫날부터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대통령 행정명령은 일반적으로 집무실에서 서명하는 것이 관례지만, 그는 예상과 달리 지지자들로 가득 찬 ‘캐피털 원 아레나’에서 열린 취임 퍼레이드에서 1호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내려졌던 행정조치 78건을 한꺼번에 철회하며 강렬한 ‘쇼맨십’을 발휘한 것이다.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정책 역시 구체적인 로드맵 없이 ‘스무고개 놀이’처럼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다. 취임사에는 비교적 온건한 무역정책 그림이 담겼다. 트럼프는 “미국 노동자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무역 시스템의 개편을 시작할 것”이라며 “다른 나라를 부유하게 하기 위해 우리 시민에 과세하는 대신, 우리 시민을 부유하기 위해 외국에 관세를 부과하고 세금을 매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우리는 모든 관세, 의무, 수입을 징수하기 위해 대외세입청을 설립하고 있다”고 덧붙였다.당초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와 캐나다가 불법이민과 마약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25%의 관세를, 중국 역시 펜타닐 수출 차단책을 내놓지 않으면 취임 당일 10%의 관세를 추가하겠다고 경고했는데 이같은 내용이 빠졌다. 이에 시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에 대해 신중한 태도로 전환했다고 해석하며 안도했다. 안도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저녁 추가 행정명령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관세를 2월 1일쯤 부과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전 세계는 다시 관세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트럼프는 중국 관세에 대한 질문에는 구체적으로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국가주석과 협상을 염두에 두고 말을 아끼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하루 만에 바뀌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과 하루 뒤인 21일(현지시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대중국 관세부과 시점과 관련해 “아마도 2월 1일”이라고 밝혔다. 당초 밝힌 대로 멕시코, 캐나다 외 중국에게도 신규 관세를 물리겠다는 뜻을 다시 밝힌 것이다. 그는 구체적인 관세 플랜을 제시하기보다는 즉흥적으로 하나둘씩 던지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야말로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다.문제는 트럼프의 이런 움직임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캐나다, 멕시코, 중국 관세는 그가 줄곧 주장하는 불공정 무역에 대한 관세 조치가 아니다. 이는 경제문제도 아닌 정치·외교적 문제다. ‘관세맨’ 트럼프 대통령은 2기 행정부에서 관세를 무역 불균형 해소 수단이 아니라 전방위적인 외교 압박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4월1일 이후 무역전쟁 몰아칠 듯…USMCA 개정 우선순위 본격적인 무역전쟁은 4월 1일 이후 가시화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서명한 ‘미국 우선 무역 정책’ 각서에는 재무부‧상무부‧무역대표부(USTR)가 4월1일까지 무역파트너 국가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검토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권고하도록 기술돼 있다. 즉, 향후 2~3개월 동안 트럼프 행정부는 본격적인 관세 및 무역 전략을 수립할 시간이 주어진 셈이다.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먼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지명자와 제이미슨 그리어 USTR대표 지명자의 청문회 및 인준 시간을 기다리겠다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연방정부 직원들을 총동원해 전 세계를 뒤흔들 관세 및 무역정책을 세심하게 짜겠다는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약 석 달가량 시간을 두고 무역적자 원인과 각국의 무역장벽을 비롯해 환율 조작 문제까지 종합적으로 분석하겠다는 얘기다. 물론 이 시간 동안 무역 파트너국이 적절한 무역적자 해소책을 가져오면 공격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여지를 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주목할 점은 USTR에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개정 준비 절차를 시작하라는 지시가 포함됐다는 점이다. USMCA는 6년마다 협정 이행사항을 검토하게 돼 있는데, 2026년에 첫 시점이 도래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올해 안에 이 협정을 대거 뜯어고치는 것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재협상을 통해 특히 무역협정의 자동차 관련 조항을 변경해 현재 캐나다와 멕시코에 있는 자동차 공장을 다시 미국으로 이전하는 ‘리쇼어링’에 집중하고 있다고 트럼프 최측근들은 언급하고 있다. 한국 ‘트럼프 레이더망’서 빠져 있지만…확대된 무역적자 변수현재까지 한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레이더망’에서 벗어나 있는 듯 하다. 그는 아직 한국의 무역 관행이 불공정하다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 현 시점에서 그의 최우선 타깃은 멕시코·캐나다·중국이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때 한미자유무역협정(FTA)를 개정했지만, 그 이후 무역적자는 더욱 확대됐다. 물론 이는 한국기업들이 대미 투자를 늘리면서 수출이 늘어난 영향이 적지 않다. 하지만 트럼프 스타일상 구체적인 원인보다는 단순히 무역적자 수치에 초점을 잡고 언제든 한국을 공격할 가능성이 크다. 각국의 무역협정을 재검토하는 그리어 USTR 대표는 트럼프 1기 시절 ‘무역차르’로 불렸던 로버트 라이트 하이저의 비서실장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한미FTA 개정에 깊숙이 개입했던 만큼, 향후 한국과 무역협정을 다시 검토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트럼프 대통령의 2기 행정부는 예측 불가능한 관세 정책을 앞세워 국제무역 질서를 흔들고 있다. 당장 한국이 주요 타깃에서 제외됐다고 해도, 트럼프 스타일을 감안하면 언제든 관세 공세 및 무역협정 개정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만큼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2025.01.25 06:00

4분 소요
뒷걸음질 칠 순 없습니다 [EDITOR’S LETTER]

전문가 칼럼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백악관 홈페이지에 실린 문구인데요, 이는 ‘노쇠한 라이언킹’이 아니라 강하고 안전하고 번영한 세계 초강대국의 복귀를 말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철저한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미국의 황금시대’를 열겠다고 했습니다. 세계 안보, 동맹과의 동반성장, 강대국으로서 지는 국제협약 책임 등 세계 리더 국가로서의 역할을 더는 하지 않고 오로지 자국 이익만을 추구하겠다는 얘기인데요, 과거 서부 개척 같은 영토 확장에 나선다는 뜻도 내비쳤습니다. 이를 위한 첫 행보로 취임식 날 세계보건기구(WHO)와 파리 기후변화 협정을 재탈퇴하는 등 100건에 달하는 행정명령과 각종 조치를 쏟아냈습니다. 미국을 더 위대하게 만들기 위한 대변화와 새로운 국제질서 수립에 시동을 건 것입니다. 각국은 트럼프발 대격변에 대비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유럽과 중동 국가들은 ‘트럼프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자 외교를 확대하고 있는데요, 유럽연합(EU)는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섰고, 러시아와 이란은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조약을 체결하며 밀착을 강화하고 있습니다.국제질서가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로 눈을 돌리면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특히 최근 계엄·탄핵 정국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서울 서부지법에 대한 테러를 자행한 사건은 충격적입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전·현직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에도 폭력 사태 없이 평화적으로 해결하며 전 세계에 모범적인 민주 국가로 평가받았으며, 국민들도 이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번 계엄·탄핵 사태도 1020세대의 응원봉과 K팝 시위로 선진국의 자부심을 그나마 지켜왔는데, 서부지법 폭동으로 순식간에 후진국으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각국이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변화 속에서 생존과 전진을 위해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을 때, 우리는 뒷걸음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도 국제질서의 변화에 올라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재계 리더들이 속도감 있는 변화를 적극 주문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라는 중대한 시기를 맞아 TV 시사대담 프로그램에 나와 “세계 무역 질서가 세계무역기구(WTO) 다자주의 체제에서 1대 1 양자주의 체제로 바뀌고 있다”며 “수십 년간 활용했던 수출주도형 경제모델은 현재의 무역 질서에서 과거처럼 작동하기 어렵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는 대응책으로 글로벌 경제연대, 해외 투자와 소프트파워 등 대체 모델, 해외 시민 유입 등을 제시하며 “모든 것을 법으로 해결하는 것보다 모든 경제주체가 토의와 컨센서스로 속도감 있게 돌파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최 회장의 말처럼 속도감 있는 변화로 대한민국의 퇴보를 막아야 할 때입니다.

2025.01.25 06:00

2분 소요
비트코인, 달러 패권을 위한 트럼프 전략의 핵심 [스페셜리스트 뷰]

전문가 칼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30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달러 패권’에 도전하면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러시아·중국 주도의 신흥경제국 협의체인 브릭스(BRICS)를 향해 경고했다. 미국이 달러 패권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2024년 1분기를 기준으로 전 세계 외환 거래의 90%, 외환보유고의 59%, 외국 은행 대출의 69%, 외국 통화표시 채권 발행의 70%는 달러로 이뤄진다. 미국의 달러 패권은 미국의 경제·군사·정치적 힘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미국의 힘이 줄어든다면 달러 패권도 약화할 수밖에 없다. 또 달러 패권이 약화하면 미국의 글로벌 패권도 약화할 것이다.미국이 달러 패권을 갖게 된 것은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9년 시작된 대공황으로 인해 금융 시스템이 붕괴 직전까지 몰리자 개인과 기업은 금화를 축적하고 금 보유량을 늘리려 했다. 이는 당시 금본위제(통화의 표준 단위가 일정한 무게의 금으로 정해져 있거나, 일정량의 금 가치에 연계된 화폐 제도) 아래서 통화 공급을 줄여 경제를 더욱 악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이에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3년 4월 5일 대통령 행정명령을 통해 미국 내 개인의 금 보유와 거래를 금지했다. 루스벨트 행정부는 1934년 금 준비법(Gold Reserve Act)을 통해 금 거래 제한을 법적으로 제도화했다. 이로써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금을 집중시켜 금 보유량에 기반한 통화 공급을 늘릴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미국이 영국·프랑스·소련 등 연합국에 무기·식량·장비 등 물자를 공급하고 금을 받았기 때문에 미국의 금 보유량이 증가했다. 그 결과 전쟁이 끝날 무렵 미국은 전 세계 금 보유량의 약 75%(약 2만톤)를 보유했다. 미국은 이를 토대로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라는 전후 국제통화제도를 만들었다. 달러 패권의 시작이었다. 미국 달러만이 금으로 교환할 수 있는 통화가 됐고 다른 주요 국가들은 자국 통화를 달러에 고정하는 고정환율제를 채택했다. 하지만 1960년대 후반에 들어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미국의 재정적자와 무역적자가 증가하며 달러를 향한 세계 각국의 신뢰는 약화했다. 프랑스와 서독 등 여러 나라는 보유한 달러를 금으로 교환하려 했고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1971년 금과 달러의 교환을 중단하는 결정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이로써 브레턴우즈 체제(금 대신 미국 달러를 국제 결제에 사용하도록 하는 국제통화체제)는 1973년 공식적으로 종료됐다.그렇지만 미국은 달러의 글로벌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석유와 달러를 연계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1970년대 초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 강력한 군사·정치적 보호를 약속하며 석유 거래에서 달러로만 거래하도록 합의했다. 이로써 전 세계는 석유 거래에 달러를 사용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는 달러에 대한 수요를 유지하는 강력한 장치가 됐다. 석유 거래 기반의 ‘페트로 달러’ 체제는 달러 패권을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미국은 1980년대부터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전 세계적으로 달러 기반의 자본 흐름을 확대했다. 달러가 무역뿐 아니라 국경 간 자본 이동에서도 주요 통화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신흥경제국가가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 외환보유고로서 달러를 비축하기 시작했다. 이는 달러 수요를 더욱 증가시켰다. 더욱이 세계적인 금융 위기와 같은 대형 위기 상황에서도 미국 달러는 ‘안전 자산’으로 인식돼 전 세계 자본이 달러로 몰렸다. 달러 패권이 더욱 강화된 것이다.중국의 부상·가상화폐 등장, 도전 받은 달러 패권달러 패권은 현재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첫 번째는 중국의 도전이다. 중국은 자국 화폐인 위안화를 국제화하려는 노력을 확대했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서방의 금융 제재로 인해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배제되자 러시아도 달러 이외의 통화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는 중국에 싼 가격으로 원유를 공급하며 위안화로 대금을 받았다. 이로써 중국과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서방의 달러 패권에 도전장을 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모든 제품에 60%의 관세를 부과하는 등 1기 행정부보다 강력하게 중국을 제재하려는 정책을 쓰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중국은 무역 거래에서 위안화로 결제하는 비율을 더 높이려 할 공산이 크다. 중국은 이미 디지털 위안화를 개발해 국제 결제에서 활용하려 하고 있다. 러시아는 중국·브라질·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다른 브릭스 국가와 함께 브릭스 브릿지(BRICS Bridge)라는 브릭스 결제 시스템을 개발해 스위프트를 대체하려 한다. 서방의 금융 제재를 피하고 이들의 무역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달러 패권’에 도전하면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브릭스를 향해 경고했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탈달러’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상황이다. 달러 패권을 놓고 큰 전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달러 패권의 운명은 외부의 도전보다 미국 내부의 의도적인 또는 우발적인 정책변화에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도 있다. 미국이 달러 패권을 유지한다는 것은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계속된다는 뜻이다. 이는 달러가 ▲국제무역 ▲금융거래 ▲자산 보유 등에 널리 쓰인다는 것이고, 전 세계에서 달러에 대한 지속적인 수요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일정량의 달러를 계속해서 해외에 공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즉 미국이 수입하는 것이 수출하는 것보다 많아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적자가 누적되면 결국 미국 경제의 신뢰도에 부담이 된다. 달러 가치의 안정성이 위협받을 공산도 크다. 이를 트리핀 딜레마(Triffin Dilemma)라고 한다.미국이 경상수지 적자를 유지하면 달러는 지속해서 국제 시장에 공급된다. 세계 경제는 이를 통해 유동성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외국으로 흘러간 달러는 다시 미국의 자산(채권·주식 등)에 투자되면서 미국 경제에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을 해 왔다. 달러의 글로벌 순환 덕분에 미국의 금리는 낮게 유지될 수 있었고 미국 정부와 기업들은 싸게 돈을 빌릴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매년 엄청난 대미 무역 흑자를 보고 미국 국채를 사는 방법으로 경제 성장을 이루며 부를 축적했다. 이제 중국이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더욱이 중국의 싼 공산품이 미국으로 몰려오며 미국의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빈곤과 마약중독으로 내몰렸다. 미국은 더 이상 이를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미국인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만들겠다는 ‘사업가’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대중국 수입품에 60%의 관세를, 다른 모든 수입품에 10%의 보편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정책을 내걸었다.비트코인, 달러의 대안이 될까트럼프 대통령은 수출과 수입의 규모가 같을 때만 공정무역으로 본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무역적자를 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제 금융시장에 달러가 제대로 공급되지 못해 달러 가격이 높아진다. 이에 부담을 느낀 많은 나라는 달러 이외의 결제 수단을 찾을 수 있다. 유로화나 위안화일 수 있으나, ‘비트코인’이 대안이 될 수도 있다. 비트코인은 중앙은행이나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분산형 디지털 통화이다. 그래서 국가 간 거래에서 은행·정부 등 중개 기관의 역할이 필요 없다.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을 두어 거래의 투명성과 보안성을 제공한다. 또 일상적인 상거래에서도 사용이 확대되고 총공급량은 2100만개로 한정돼 가치 하락의 염려가 없다.비트코인의 이런 장점에 주목하는 국가와 개인은 해외 송금에서 달러를 통한 스위프트 시스템 대신 비트코인을 대안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이란·러시아 등 미국의 경제 제재를 받는 국가들이 비트코인을 이용해 거래를 우회할 수 있다. 또한 금융 시스템을 잘 갖추지 못했거나 불안정한 신흥국·개발도상국은 비트코인으로 디지털 자산 기반의 금융 시스템을 구축할 공산이 있다. 엘살바도르와 같은 일부 국가는 이미 비트코인을 법정 통화로 채택하고 달러 의존도를 낮추고 있다.비트코인은 그동안 가치 변동성이 심해 안정적인 교환 수단이나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 신뢰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사용하는 국가와 개인이 늘어나며 가치 변동성은 줄어들 것이다. 비트코인의 가격 변동성 감소는 비트코인의 사용을 확대하고, 이는 다시 가치 변동성을 감소시킨다. 이런 선순환은 비트코인의 사용이 계속 증가할 것이다. 비트코인의 국제적 사용 확대는 글로벌 준비 통화로서의 달러 수요를 감소시키고 달러의 가치와 미국 경제의 대외적 영향력을 약화할 수 있다.여러 국가가 준비하는 ‘중앙은행 디지털 통화(CBDC)’가 활성화되면 스위프트와 같은 기존의 달러 기반 결제 시스템을 향한 의존도 줄어들 수 있다. 이 때문에 CBDC의 발행에 가장 열성적인 나라가 중국이다. 브릭스는 회원국 간 무역 결제에 브릭스 브릿지를 통해 각국의 CBDC를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트럼프 “가상자산 대통령이 되겠다”비트코인과 같은 탈중앙의 디지털 화폐, CBDC의 등장은 글로벌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독점적 지위를 위협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국가 전략 자산에 비트코인을 추가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미국을 가상자산의 수도로 만들고, 자신은 가상자산 대통령이 되겠다”라고도 했다. 많은 사람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발언이 표를 얻기 위한 선거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MAGA의 핵심 정책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미국이 패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달러 패권을 지켜야 하고, 달러 패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가상자산 패권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디지털 화폐는 디지털 사회에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다만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CBDC를 반대하고 비트코인과 같은 탈중앙화된 디지털 화폐를 선호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상자산을 제도적으로 수용하고 규제를 완화하면 글로벌 자본과 인재가 미국으로 몰려들어 미국이 가상자산 시장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미국은 디지털 경제의 표준을 설정함으로써 디지털 금융 기술과 블록체인 기반 거래를 주도하는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미국이 USDT나 USDC와 같은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지원해 가상화폐와 전통 금융 시스템의 연결고리를 강화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달러와 1:1로 연동된 USDT를 사면 이를 발행한 테더는 달러 수입금으로 미국 국채를 매입해 이익을 남기는 방식이다. 실제 테더는 보유자산의 약 75%를 미국 국채에 투자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안정적인 국채 수요처가 생기는 셈이다. 스테이블코인이 아니어도 대부분의 가상자산 거래는 달러로 표기·거래된다. 가상자산 시장이 성장하면 달러의 유동성과 사용이 증가하는 구조다. 이렇듯 미국이 가상자산과 달러 기반의 금융 시스템을 연계하면 세계 경제에서의 달러 패권을 유지할 수 있다.비트코인은 디지털 금(digital gold)으로도 불리며 가치 저장 수단으로 주목받는다. 미국이 비트코인을 국가 전략 자산으로 보유하면 달러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 이는 마치 1930년대 이후 전 세계 금을 모아 달러를 전 세계의 기축통화로 만든 것과 비슷하다. 2024년 말 현재 미국 정부는 불법 거래로부터 몰수한 21만개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매각하지 않고 보유량을 지속해서 늘린다는 구상이다.이는 트럼프 대통령만의 생각은 아니다. 신시아 루미스 미국 와이오밍주 상원의원은 지난해 7월 연준이 비트코인을 전략적 준비금으로 보유할 것을 의무화하는 ‘2024년 비트코인법’을 상원에 상정했다. 이 법안은 미국이 향후 5년 동안 비트코인 100만개를 매입해 전체 공급량의 5%를 확보하고, 이를 최소 20년간 보유하도록 규정한다. 또한 비트코인 매각은 연방 채무 상환 외의 목적으로는 금지된다. 이는 비트코인 가격이 장기적으로 상승할 것이기에 추후 매각해 연방 채무를 상환할 수 있다는 논리에 기초한다. 설사 20년 뒤 비트코인을 처분하지 않더라도 미국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의 신용 등급을 상향 조정해 미국 달러가 글로벌 안전 자산으로 인정받는 데 비트코인이 도움을 줄 것이다.미국의 기업들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6일을 기준으로 마이크로스트래티지가 비트코인 44만4262개를 보유해 독보적인 1위를 차지했다. 마라 홀딩스와 라이엇 플랫폼스, 허트 8, 테슬라 등은 2~5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 기업은 모두 미국 기업이다. 비트코인 보유량 상위 10개 기업 중에서는 캐나다 기업 2개와 일본 기업 1개를 제외하면 모두 미국 기업인 셈이다.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지난해 초 미국 증권시장에 상장 승인을 받은 이후 ▲블랙록 ▲그레이스케일 ▲피델리티 ▲인베스코 ▲아크 인베스트 등 자산운용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비트코인도 100만개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런 자산운용사들도 모두 미국 기업이다.개인의 비트코인 보유량은 익명성과 프라이버시로 인해 국적별 통계가 어렵다. 하지만 미국이 주요 국가 중 가장 먼저 증권시장에 비트코인 현물 ETF를 상장한 점을 고려하면 미국인이 비트코인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미국 정부가 비트코인 보유량을 계속 늘리려는 것은 가격 상승에 따른 투자 수익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미국이 세계 최대 금 보유국이 됐고, 이를 토대로 달러는 기축통화가 되었다. 80년이 지난 지금 트럼프 대통령은 디지털 금인 비트코인의 최대 보유국이 되어 달러 패권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속셈이다. 미국이 비트코인을 국가 전략 자산으로 인정하면, 다른 국가들도 이를 따르게 될 공산이 크다. 미국이 글로벌 가상자산 규제와 표준을 주도하는 역할을 강화하면, 달러 패권을 지지하는 새로운 금융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미국이 디지털 금인 비트코인에 대해 지배력을 가진 상황에서 비트코인이 국제적 결제 통화로 활성화되면 미국은 달러의 지배력을 유지하면서 다른 국가가 독자적인 디지털 통화를 통해 달러를 대체하려는 시도를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025.01.20 10:00

9분 소요
문화예술계 불매운동, 어디까지가 합법일까[백세희의 컬처&로(LAW)]

전문가 칼럼

새해가 밝았다. 하지만 우리는 작년 말 벌어진 여러 대형 사건·사고의 여파로 여전히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중 대통령 탄핵에 따른 여파는 정치, 경제, 문화·예술 분야를 막론하고 퍼져나가고 있다. 가수 아이유가 탄핵에 대해 찬성 의사를 내비치고 탄핵 집회에 참석하는 팬들을 위해 음식을 ‘선결제’한 사실이 알려지자, 이에 반대하는 이들이 아이유가 광고하는 제품들에 대한 불매운동을 선언하기도 했다.요즘 소비자들은 단순히 물건을 사주는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요 몇 년 사이에 떠오른 소비 성향은 이른바 ‘정치적 소비자 운동’ 또는 ‘정치적 소비주의’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기준으로 윤리적이지 못한 개인 또는 기업에는 돈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직접적으로 유명 연예인의 공연을 불매하거나, 간접적으로 그가 광고 모델로 등장하는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펼치기도 한다. 이런 불매운동은 성공하기도, 때론 실패하기도 한다. 과거의 몇몇 사례를 살펴보자. 2012년 팝스타 레이디 가가의 내한공연에 대한 개신교 단체의 반대 운동은 실패했다. 공연은 정상적으로 진행됐고, 오히려 노이즈 마케팅만 해준 셈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반면 2016년 뮤지컬 <모차르트!>의 경우, 그룹 엠씨더맥스의 멤버 이수의 캐스팅이 알려지자 뮤지컬 팬들은 제작사를 비롯해 위 뮤지컬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오스트리아 빈 극장협회(VBW), 모차르트 재단과 공연이 개최될 예정인 세종문화회관, 서울시, 아동인권보호센터 등 많은 기관에 민원을 접수했다. 온라인상의 하차 서명 운동과 광고를 위한 모금 활동, <모차르트!> 예매 취소 인증, 더 나아가 제작사가 올리는 다른 뮤지컬에 대한 예매 취소까지 이뤄졌다. 결국 그는 하차했다. ‘표현의 자유’와 ‘재산권’의 충돌이러한 형태의 불매운동을 적극적으로 해도 괜찮은 걸까? 불매운동은 개개인의 목소리를 한데 모아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소비자 주권을 되찾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기업 영업의 자유를 제약한다는 문제가 있다. 소비자의 표현의 자유와 기업의 재산권이 부딪히는 셈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예매 취소를 인증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불매운동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는 행위는 우리 헌법이 인정하는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것으로서 문제 되지 않는다. 온라인상의 여론을 주도하는 것도 그 자체로 위법한 것은 아니다. 어떤 유명인이나 회사가 이런저런 잘못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물건을 사지 말자고 주장하는 소비자 운동은 그 자체로는 정당하다. 우리 헌법은 소비자 운동에 대해 이렇게 따로 별도의 조문을 두고 있다.헌법 제124조 국가는 건전한 소비행위를 계도하고 생산품의 품질향상을 촉구하기 위한 소비자보호운동을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한다.문제는 그 방법이다. 누군가를 비난하며 일부로 거짓 정보를 퍼뜨려서는 안 된다. 다른 손님들이 가게나 콘서트장 등 영업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물리적으로 막아서는 것도 안 된다. 이는 굳이 불매운동을 들먹이지 않아도, 시민 사회에서 당연히 위법으로 여기는 행동들이다.복잡한 문제는 직접 그 회사의 물건이나 용역의 구매를 보이콧 하는 것을 넘어, 그 회사가 제3자와 맺고 있는 거래관계에 개입할 때 생긴다. 불매운동 한계 선언한 시금석 : 마이클 잭슨 공연 판결그렇다면 거래처에 위협을 가하면 어떻게 될까? 여기에는 불매운동계의 대표적인 사건과 판례가 있다. 불매운동이 민사소송으로 번져 법정에 가면 거의 모든 판결이 이 사건을 언급한다. 바로 1996년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내한공연 불매운동 사건이다.1996년 10월, 팝스타 마이클 잭슨의 국내 공연이 확정되자 사단법인 기독교윤리운동실천본부 등 50여 개의 시민·사회·종교 단체로 결성된 ‘마이클 잭슨 내한공연반대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반대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마이클 잭슨의 아동 성추행 스캔들, 외화 낭비, 청소년의 과소비 조장 등을 이유로 삼았다. 공대위는 주최사인 태원예능과 공연 관련 계약을 맺은 방송사, 입장권 판매 대행사 등에도 소비자 불매운동을 전개하겠다는 항의 서한을 보냈다. 이렇게 불매 협박을 받은 거래처 중 일부가 실제로 태원예능과의 계약을 취소했다. 공연은 예정대로 진행됐지만, 공연을 주최한 태원예능은 공대위의 불매운동으로 금전적인 손해를 입었다. 당시 입장권 판매 대행 계약을 맺은 은행들이 공대위의 불매운동 협박에 계약을 취소하는 바람에 태원예능이 울며 겨자먹기로 직원을 직접 뽑아 전화 예매를 받으며 인건비와 광고비 등을 지출했다는 것이다. 태원예능은 공대위의 공동대표와 간사를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긴 시간 끝에 결국 태원예능은 손해액 중 일부를 배상받는 판결을 얻었다. 대법원은 소비자 불매운동이 영업권에 제한을 가져온다고 해도 입장권 구매 결정을 소비자들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겼기 때문에 일단 허용된다고 봤다. 하지만 공대위가 태원예능과 거래 관계에 있는 은행들(제3자)을 압박해 계약 파기로 이어졌다면 그 계약에 따른 태원예능의 경제적 이익이 침해된 것으로서 이는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01. 7. 13. 선고 98다51091 판결). 이렇게 소비자 불매운동의 민사상 한계를 설정한 시금석과도 같은 판결이 탄생했다.결국 ‘선’을 넘었는지가 중요 마이클 잭슨 내한공연 불매운동 사건은 민사소송으로 마무리됐다. 문화·예술계의 불매운동은 이렇게 민사로 해결하는 경우가 종종 있을 뿐이고, 형사 고소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중의 ‘인기’를 이윤의 원천으로 삼고 있는 업계의 특성상 잠재적 소비자를 범죄자로 만드는 것에 대한 부담 때문이 아닐까 짐작한다. 그렇지만 이론상 형사처벌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불매운동이 집단적·지속적으로 항의 전화를 걸어 회사의 업무를 마비시키거나, 거래처을 압박해 거래를 끊게 하는 등 도를 넘어설 때는 형사상 업무방해죄, 공갈죄, 강요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실제로 2008년과 2009년 이른바 ‘조선·중앙·동아일보 광고 중단 불매운동’에 대해 우리 법원은 불매운동을 주도한 인터넷 카페 운영진과 캠페인 대표에 업무방해죄, 강요죄, 공갈죄를 선고했다. 정리하자면, 단순히 불매운동을 주장하거나 신고된 집회·시위를 하는 건 괜찮지만 특정 개인이나 기업에 구체적인 ‘위력’을 가해 거래 행위를 방해하면 민사상은 물론 형사상 책임도 질 수 있다는 게 우리 법원의 태도다.결국은 이른바 ‘선을 넘는지’의 문제다. 불매운동을 진행하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각자 견해의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으로는 정당한 의견 피력의 범위에 머문다. 넘어서는 안되는 그 ‘선’이 구체적으로 어디까지인지 미처 모를 수 있다. 이번 칼럼이 소비자들이 넘지 말아야 할 ‘선’에 대한 윤곽을 잡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백세희 법률사무소 아트앤 대표변호사

2025.01.19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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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잃는 병 치매…조기 검진·관리하면 진행 늦춘다 [이코노 헬스]

전문가 칼럼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병. 치매에 붙은 수식어다. 세상에 잔인하지 않은 병은 없다. 모든 병은 증세가 심해질수록 잔인해진다. 환자와 가족도 병이 악화하면 육체·심리적으로 힘들어진다. 그런데도 유독 치매를 일컬어 잔인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기억’을 잃어서다. 기억을 잃으면 사람은 삶을 유지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진다.치매는 인지 전반에서 퇴행이 발생했을 때 붙이는 병명이다. 퇴행이 기억에 그친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치매가 오면 먼저 언어 능력에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특정 단어가 기억나지 않아 ‘이거’ ‘저거’ 등 지시사로 대상을 가리킨다. 명칭실어증(Anomic Aphasia)이다. 감정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매사 의욕을 내던 사람이 갑자기 모든 일에 의욕을 느끼지 못하거나 온화했던 사람이 갑자기 감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치매 환자는 판단력도 상실할 수 있다. 특히 시간·장소·사람을 인지하는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오늘이 몇 년 몇 월인지 잊고, 장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길을 잃는다. 가족의 얼굴은 물론 자신의 이름도 기억에서 지워진다. 순간 기억력만 떨어지는 단순 건망증에서는 보이지 않는 ‘지남력’(指南力·Orientation) 상실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치매로 ‘나’를 잃어가는 셈이다. 사람들이 치매를 다른 중증질환보다 두렵게 느끼는 이유다.가족에게 주어지는 부담도 사람들이 치매가 자신을 찾아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유다. 치매는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능력을 퇴행시킨다. 치매 환자의 가족들도 치매 환자를 돌보며 부담을 느끼기 마련이다. 치매 환자는 판단력이 흐려지고 감정 조절이 어려워져 일상 행동에서 문제가 많아진다. 의사소통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니 답답함도 해소하기 어렵다.50대 A씨가 그랬다. 그는 치매 초기 증상을 겪는 모친을 봉양하다 상담실을 찾았다. 어머니께서 집안에서 물건을 잃어버리고는 매번 책임을 A씨한테 돌려서 갈등이 생긴다고 한탄했다. 자신을 골탕 먹이려고 물건을 일부러 숨겼다느니, 골탕먹는 자신을 보며 좋아한다느니, 어머니가 역정을 내면 참다못해 자기도 주체하지 못하고 버럭 화를 내게 된다고 A씨는 말했다.“옛날 엄마는 어디 가고 이렇게 변한 건지, 너무 속상해요.”치매 환자를 직접 돌보지 않아도 보호자의 역할을 한다면 부담이다. 치매 환자가 밖에 나가 길을 잃을까 걱정하거나, 경제적으로는 병원비·약값·돌봄 서비스 이용비 등은 보호자의 가계를 압박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치매를 진단받은 사람은 물론 치매 조짐만 있는 사람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40대 B씨의 사례도 마찬가지다.B씨는 평소 편두통이 심해 컴퓨터단층촬영(CT)을 찍었다. CT를 통해 치매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종합하면 대뇌 주름이 정상인보다 적어 조심해야 한다는 소견이었다. B씨는 대뇌기능검사인 간이정신상태검사(MMSE·Mini-Mental State Examination)에선 정상 점수를 받았지만, 이는 B씨가 마음을 다잡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외가 친척 중에 치매 환자들이 있어, 자기도 그들처럼 폐를 끼치게 될지 걱정스럽다는 이야기였다.“치매로 고생하시는 분들을 가까이에서 보다 보니까, 저도 저렇게 될까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약물치료·인지활동·기억력 훈련 등으로 관리아직 치매 완치법을 모른다는 점은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다행인 점도 있다. 치매를 조기에 발견한다면 적절한 치료를 통해 증상 진행을 최대한 늦출 수 있다는 것이다. 약물 치료와 더불어 인지 활동, 기억력 훈련 등을 통해 치매를 관리한다면 일상생활에서 받는 지장을 줄일 수 있다. 치매에서 초기 검진과 예방이 중요한 이유다. 기초 지방자치단체 단위 별로 있는 치매안심센터를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치매관리법을 알고 있다면 막연한 불안감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 B씨는 검진 이후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 치료를 꾸준히 받는다. 생활 습관도 같이 바꾸고 있다. 평소 인스턴트 식단을 선호하던 그는 이제 채소·통곡물·육류 위주의 건강한 식단을 유지한다.B씨는 최근 새로 산 스마트 밴드도 자랑했다. 사실상 운동과 담을 쌓고 지내던 B씨가 2만보 이상 걷는 산책을 습관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마련한 방편이다. 치료와 습관 개선을 병행하며 치매 예방을 위해 노력한 결과 B씨는 정신 건강 측면에서 한층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고 있다.치매 가족도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정신적으로는 고통을 일정 부분 줄일 수 있다. A씨는 꾸준하게 상담과 치료를 받으면서 어머니와의 갈등에서 생기는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만 중증 치매 환자를 돌보는 과정에서 신체적·경제적 고통이 생길 수 있다. 환자가 치매 등급 판정을 받아 치료와 요양 측면에서 지원받더라도 부담이 되긴 매한가지다.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주민등록인구 5명 가운데 1명이 만 65세 이상 노인이다. 평균 연령이 높아지면서 치매 인구도 증가하는 추세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 중 치매 유병률은 11%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65세 이상 치매 환자 수는 100만명을 넘긴 105만명으로 추정된다. 사회 전체가 치매에 슬기롭게 대처해야 하는 시점이다. 모두가 함께 치매를 예방하고 관리하며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병’을 이겨내길 소망한다.

2025.01.19 09:00

4분 소요
동남아에 불고 있는 데이터센터 건설 붐…한국도 배워야 [동남아시아 투자 나침반]

전문가 칼럼

우리는 지금 인터넷을 통해 제공되는 서비스가 없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한 활동을 위해 끊임없이 데이터가 만들어지고 어디인가 저장되고 있다. 전 세계에서 하루에 생성되는 데이터의 양은 얼마나 될까? 2024년 전세계에서 하루에 새로 만들어졌던 데이터의 양은 무려 4억274만 테라바이트(TB, Terabytes)라고 한다. 그리고 2025년에는 4억6300만 TB가 매일 쌓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 속도를 감안하면 노트북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1TB의 하드디스크가 매일 5억개 이상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때 어마어마한 양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사용하는 데이터는 사실 개인용 컴퓨터가 아닌 데이터센터라는 곳에 저장된다. 우리가 네이버 또는 구글 서비스를 쓰거나 유투브에 비디오를 업로드 할 때 저장되는 공간은 데이터 센터내의 저장장치인 것이다. 데이터 센터는 더 나은 인터넷 서비스와 통신을 지원하는 서버·데이터 스토리지 시스템·네트워킹 장비를 수용하기 위해 지어진 대규모 시설이다. 이를 통해 게임, 라이브 스트리밍 등의 인기있는 온라인 활동은 물론 클라우드 컴퓨팅과 AI와 같은 첨단 기술도 구현할 수 있다. 데이터센터 건설 부지…안정적인 전력 등 갖춰져야 데이터센터가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전력 및 물 공급, 각국과 연결되는 해저 케이블의 활용 가능성 그리고 재해 가능성이 낮아야 한다. 이중에 하나만 문제가 발생해도 인터넷 서비스에 이상이 발생한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데이터센터는 이런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선진국에 건설되곤 했다. 하지만 데이터센터 건설 트렌드가 바뀌었다. 현재 전 세계에서 데이터센터 투자가 가장 활발한 지역이 있다. 바로 동남아시아다.필자가 자카르타 인근에 공장을 짓기 위해 공단을 두 군데 방문한 날이 있었다. 파트너사에서 이미 두 달 전에 방문을 했었고 공장 건설을 위한 지역을 다시 논의하기 위해 투어를 했다. 두 곳의 공단에서 좋은 위치는 이미 데이터센터 회사들에 의해 계약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공단내의 빈 구역이 데이터 센터로 인해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계약한 회사들은 우리가 이름만 들으면 아는 글로벌 IT 기업들이다.아시아·태평양(APEC) 지역에서 2023년과 비교하면 2024년에 13%이 데이터센터 용량이 늘어나고 있다. 동남아시아는 2023년과 비교하면 2024susdpafu 1.5배의 건설계혹이 확정된 것을 보면 얼마나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특히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데이터센터는 기존 인터넷 검색에 비해 최소 4~5배의 처리 용량을 필요로 하고 있다. 향후 5~7년 간 동남아시아의 데이터센터 수요는 매년 20%씩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동남아시아에 데이터 센터 및 관련 산업 육성을 위해 마이크로소프트는 22억 달러(3조2000억원), 아마존은 112억달러(16조5000억원), 이미 90억달러(13조 3000억원)을 투자한 구글은 추가로 이지역에 10억달러(1조 5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동남아 지역에서 데이터센터 건설 수요 늘어나는 이유는… 동남아시아에서 데이터 센터 건설 수요가 늘어나는 이유는 3가지다. 첫 번째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디지털 경제이다. 지금까지 연 15%가 넘는 성장성을 보여온 동남아시아 디지털 경제는 2030년까지도 약 2배의 성장을 보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6억명이 넘는 인구와 향후에도 5%가 넘는 성장성이 그 배경에 있다. 또 다른 이유는 데이터 주권이다. 데이터센터는 상대적으로 작은 토지에 대규모의 투자가 이루어진다. 사무용 또는 주거용 빌딩과 달리 그 공간에 비싼 기계장치가 가득차 있다고 생각하면 단위당 투자금액이 매우 높으며, 새로운 기술이 적용되는 인공지능 데이터 센터라는 타이틀을 달았을 경우 최첨단 산업으로 분류된다. 그래서 동남아시아 각국 정부는 데이터센터 유치에 적극적이고 그 정책 중 하나가 데이터를 자국내에 두어야 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한국기업이 동남아시아에 서비스를 할 경우 데이터를 한국 내에 저장할 수 있었으나 앞으로는 그 데이터를 국경밖으로 가져올 수 없어 그 지역의 데이터 센터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추세로 가고 있다. 세 번째는 미중 갈등으로 인한 데이터 보관장소의 이동이다. 2020년 네이버가 홍콩 보안법으로 인해 데이터 백업센터를 홍콩에서 싱가포르로 옮긴 적이 있다. 미국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 틱톡 등 중국기업들조차 중국이외 지역의 데이터 저장지로 동남아시아를 선택하고 있다. 이 세가지 요인으로 인해 동남아시아의 데이터 센터 사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한국기업의 동남아시아 AI 데이터센터 진출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이뤄졌다. 이 프로젝트는 한국투자증권 인도네시아법인(KISI)과 한국투자금융그룹이 주도했다. 데이터센터는 위치가 매우 중요한데 이는 향후 부동산 부지 가격상승 효과도 함께 투자수익으로 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많은 데이터센터가 강남에 위치하고 있는 것을 보면 위치가 향후 수익률에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다. 이 데이터센터는 자카르타 중심지에서 약 2576평의 토지에 지상 18층 규모의 빌딩으로 건설된다. 총 프로젝트 비용 은 3억달러(4400억원)로 이중 자본금액은 1억달러(1600억원)로 한국투자금융그룹 계열의 한국투자리얼에셋이 50%의 지분을 가지고 나머지 지분은 인도네시아 대표적 대기업인 시나르마스가 투자한다. 프로젝트 부채 1억 9000만달러(2800억원)도 한국투자금융그룹이 주도적으로 조달할 계획이다. 이 데이터센터는 LG CNS와 시나르마스의 합작법인이 운영할 계획이며 LG 그룹의 최첨단 AI 데이터 센터 기술이 모두 적용될 예정이다.스타트업의 성장에는 관련 인프라의 확충이 매우 중요하다. 관련 인프라도 함께 성장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한국기업들도 신사업 기회를 찾길 바란다.

2025.01.18 07:00

4분 소요
스트롱맨 트럼프 출범과 투자 한파[EDITOR’S LETTER]

전문가 칼럼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20일(미국 현지시각) 드디어 출범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 동맹국을 포함해 전 세계를 긴장 속에 빠져들게 했는데요, 이날 공식 취임하며 그동안 공언했던 무시무시한 공약들을 빠르게 진행할 것으로 보입니다. 각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모든 수입품에 10~20%의 고관세를 부과하는 겁니다. 중국산에는 60% 이상의 초고관세를 매긴다고 합니다. 전 세계에 무역전쟁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건 기정사실일 듯합니다. 우리도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자국 우선·보호무역주의 태풍에서 예외가 아니어서 기업들이 비상입니다. 미국과 거래가 많은 기업들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맞춰 선물 보따리를 바리바리 싸 들고 태평양을 건너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미국 대통령 취임식으로는 처음으로 이번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100만달러(약 14억7000만원)를 기부했고, 계열사인 현대제철은 수조 원을 투자해 미국에 첫 제철소를 짓기 위한 후보지를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LS전선은 약 1조원을 투자해 오는 4월 미국 동부 버지니아주에 미국 최대 규모의 해저케이블 공장을 착공할 계획을, SPC그룹은 1억6000만달러(약 2350억원)를 투입해 미국 텍사스주에 첫 제빵 공장을 짓는 계획을 최근 각각 발표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LG전자·삼성SDI·현대차 등은 미국에 둔 생산기지에서의 생산 물량 확대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다들 미국 내 경쟁력 제고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속내는 새로 출범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행보라는 평가입니다. 국내 기업들의 이 같은 ‘최초’ ‘최대’ 투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강조한 미국 내 일자리를 확대하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우리 기업들의 돈이 미국으로 몰리고 있는 반면, 국내에는 투자 한파가 몰아치고 있습니다. 벤처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시드 투자(초기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은 441곳으로 전년 645건보다 30%가량 줄었습니다. 올해는 더 어려울 전망인데요, 이데일리가 최근 국내 주요 벤처캐피털(VC)·액셀러레이터(AC) 및 벤처·스타트업 협단체 2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75%가 ‘올해 벤처투자시장이 작년보다 안 좋아질 것’이라고 답했고, ‘좋아질 것’이라는 응답은 한 곳도 없었습니다. 벤처 투자가 몇십억도 아니고 주로 몇억 단위인데도 이렇게 얼어붙었다면, 다른 곳은 더 힘든 상황일 겁니다. 기업에 대한 투자가 막히면 따라오는 것이 일자리 축소입니다. 이미 일자리는 최악의 상황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일자리 증가폭이 전년 대비 반토막으로 급감했고, 계엄·탄핵 정국이 덮친 12월에는 마이너스를 기록했습니다. 정부 전망을 밑도는 고용절벽에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는 “전 부처가 일자리 전담 부처라는 각오로 지원방안을 신속히 마련해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이와 함께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기업에 돈이 돌 수 있도록 투자 환경을 개선하는 것일 겁니다.

2025.01.18 06:00

2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