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ESG 만들자①] “반도체 산업에 맞는 평가지표 필요해”
국내 반도체 기업들 오염물질 줄이는 신기술 개발해 ESG 환경 경영
하지만 ESG 평가기관 난립, 산업 특성 고려 않는 지표로 업계 속앓이
“인센티브로 기업이 친환경 반도체 공정기술 개발토록 유도해야”
글로벌 경영 트렌드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부각되면서 산업별로 움직임이 분주하다. 이 대변화에 흥망성쇠가 달려 있어서다. ESG 경영 중에서 특히 ‘환경’이 화두다. 기후 변화가 심각해지면서 각국이 정부 차원에서 규제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를 선도하고 있는 반도체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반도체업계는 변화에 발맞춰 저전력 반도체 개발, 공정가스 감축, 신규 공정 투자, 화학물질 관리 강화, 신재생 에너지 사용 등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하지만 그 노력이 ESG 평가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반도체 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한 ESG 환경경영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편집자주]
지난 2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세계적인 ESG 확산 추세가 국내 산업과 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15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그 결과, 국제 ESG 확산으로 국제 투자유치와 수출에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하는 산업으로 석유제품(28.9%)을 가장 많이 지적했다. 다음으로 석유화학(26.7%)과 철강(26.7%)을 뽑았다. 반면 ESG 확산으로 전망이 가장 밝은 산업에 대해서는 반도체(28.9%)를 가장 많이 꼽았다. 그만큼 반도체업계가 ESG 기초체력이 튼튼하다는 방증이다.
대체 가스 개발해 반도체 제작시 온실가스 배출 줄여
반도체 산업은 생산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다량의 용수를 사용해 환경오염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석유화학·철강 등 다른 산업보다 상대적으로 적을 뿐 생산량 증가에 비례해 환경오염물질 배출량도 늘어나게 돼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온실가스다. 지난 4월, 미국 블룸버그가 “보다 높은 효율로 작동하면서 에너지 소모를 줄이는 반도체가 (제작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더 많은 전기와 온실가스를 사용한다”고 지적한 것처럼 반도체 제작에서 온실가스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업계도 이를 인지하고 온실가스 감축에 사활을 걸고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생산에 사용되는 공정가스를 줄이기 위해 공정시간·공정단계·공정법(Clean Recipe) 등을 최적화하고 있다. 이를 통해 온실가스 약 9만 톤을 감축했다.
여기에 공정가스 처리 시설의 효율을 향상하기 위해 설비에 투입되는 RCS(Regenerative Catalytic System) 촉매에 금속을 첨가해 공정가스 처리율을 87%에서 90%로 높이기도 했다.
아울러 지구온난화지수가 낮은 공정가스를 개발했다. 반도체 제작 공정 중 불필요한 부분을 깎는 식각 공정(Etching), 불순물을 주입하는 확산 공정(Diffusion), 기판에 박막을 증착하는 공정(Chemical Vapor Deposition), 전기신호를 연결하는 금속 공정(Metalization) 등 4대 주요 공정에 적용하는 과불화탄소의 대체 가스를 개발해 적용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으로 삼성전자 사업장의 온실가스 감축량은 2018년 293만톤CO2e에서 2019년에 509만톤CO2e로, 2020년엔 709만톤CO2e까지 해마다 늘고 있다. CO2e(이산화탄소환산톤)는 온실가스를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환산한 값이다.
탄소·물·폐기물 저감 인증 ‘트리플스탠다드’ 라벨 획득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지난 6월, 반도체 제조 기업으로는 세계 최초로 영국 카본트러스트의 탄소·물·폐기물 저감 인증을 받으면서 ‘트리플스탠다드(Triple Standard)’ 라벨을 획득했다. 카본트러스트(Carbon Trust)는 영국 정부가 2001년 기후 변화 대응과 탄소 감축을 위해 설립한 친환경 인증 기관이다.
트리플스탠다드는 3년간 사업장의 탄소 배출량 3.7%, 물 사용량 2.2%, 폐기물 배출량 2.1%를 줄이고 각 분야의 경영 체제에 대한 종합 평가 기준을 만족한 기업에 수여한다. 삼성전자는 2018~2019년과 비교해 지난해 탄소·물·폐기물을 각각 9.6%, 7.8%, 4.1% 줄였다.
지난달 28일, 연세대 글로벌사회공헌원과 삼정KPMG가 연 ‘반도체 산업 환경경영 전문가포럼’에 참석한 김경아 삼성전자 DS부문 기후전략그룹장은 “현재 삼성전자는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 공정가스 처리, 설비운전 효율화 등으로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 사업장에서는 재생에너지를 직접 공급받는 것을 진행 중이고, 국내 사업장에서도 올해 2월부터 녹색 요금제로 구매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와 함께 “저전력 반도체로 소비전력을 절감하고 있고, 폐기물도 최대한 재활용률을 높여서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해 현재 재활용률이 96%에 이른다”며 “이를 2025년까지 99%까지 높이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새 냉각 방식 개발해 24만명 하루 사용량 준하는 용수 절약
SK하이닉스는 2년의 시간을 들여 개발한 ‘워터 프리 스크러버’를 이용해 폐수를 처리하고 있다. 기존 방식은 처리된 가스를 냉각하기 위해 물을 직접 분사하는 방식이었다면, 워터 프리 스크러버는 냉각수를 활용해 간접 처리하는 방식이다. 워터 프리 스크러버는 가스가 직접 물에 닿지 않아 폐수가 발생하지 않고 그 냉각수는 계속 재사용할 수 있다.
성과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금속 튜브 안에서 흐르는 물은 재사용이 가능해 현재 하루 물 사용량 7만9000여 톤을 줄일 수 있다. 이 물은 인구 24만명의 도시에서 온종일 사용하는 양과 같다.
이처럼 SK하이닉스는 공급에서 소비까지 전 과정에서 환경오염을 예방하기 위해 ESG 경영 전개, RE100(Renewable Energy 100) 가입 선언, 업사이클(upcycling·새로운 재활용)을 통한 순환체계 구축으로 실질 재활용률 99% 달성을 추진 중이다. 이런 투자는 ESG 경영, 그 가운데서도 환경 부분에 있어 반도체업계가 오래전부터 선제적으로 대응해오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해외 ESG 기관도 반도체 기업 평가 기준 제각각
평가 기관의 난립이 모든 기업의 고충이라면 반도체업계의 애로사항은 따로 있다. 반도체 산업 특성에 부합하는 지표가 없다 보니 반도체 기업의 ESG 환경 경영 활동이 종합적·객관적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하소연이다.
기업이 ESG 평가에 가장 많이 참조하는 해외 기관의 지표도 부실하긴 마찬가지다.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arbon Disclosure Project, CDP)와 다우존스 지속가능성지수(DJSI)는 반도체 산업 관련 주요 환경 요소인 용수·온실가스·폐기물 중 온실가스와 용수를 평가하고 있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은 용수만 지표에 반영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존 ESG 지표에 반도체 산업 특성을 고려한 항목들이 추가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반도체 산업 환경경영 전문가포럼’에 참석한 김정남 삼정KPMG 전략컨설팅 그룹 상무는 “산업 특성을 반영한다면 시장에서도 기업의 위험요소를 제대로 평가하면서 투자에 반영할 수 있고 이해관계자들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상무는 그러면서 “반도체 경우 용수에 가중치를 많이 주는 것처럼 반도체 업계에 적합한 평가 지표를 연구할 때”라고 밝혔다.
“친환경 경영 유도 위해 세제감면, 인센티브 필요”
신 교수는 반도체 기업의 ESG 경영 노력을 단순히 기업에만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친환경 반도체 공정기술 개발에 매진하는 기업에 정부는 세제 감면, 연구개발 지원 등의 혜택을 줬으면 한다”며 “(친환경 경영과 관련된) 특정 시설·장비에 대한 세제 감면 등 적극적인 혜택이 있으면 기업들이 더 역동적으로 투자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이와 함께 “RE100 등 전력 사용 관련 에너지 조달 믹스에서도 정부 차원의 제도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반도체는 이른바 산업의 ‘쌀’이라고 부른다. 실생활에 밀접한 전자기기 대부분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빅데이터 등 정보기술(IT)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앞으로 반도체의 역할과 범위는 확대될 전망이다.
국내 제조업 총생산의 약 10%를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이 ESG 경영이란 날개를 달고 더 높게 비상하기 위해선 “기업뿐 아니라 NGO·정부·소비자 등 이해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반도체 산업에 맞는 ESG 평가 지표와 가중치 등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허인회 기자 heo.inho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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