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17년간 참패한 韓 가전…C-커머스 확산에 더 어려워진 반등
[중국산 열기 뜨겁다]②
對中 가전 무역 17년째 적자…중국 가전 지난해 6조2190억원 구매한 한국
로보락, 삼성·LG 누르고 로봇 청소기 국내 1위…‘알테쉬’ 확산에 가전업계 긴장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한국·중국 주요 제조사가 서로의 안방을 정조준하고 나섰다.
중국 가전이 한국 시장에 스며드는 속도가 점차 빨라지면서 국내 시장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무기로 국내 시장 영향력을 키워온 중국 가전은 최근 이른바 ‘알테쉬’(알리·테무·쉬인)로 불리는 C-커머스(중국 이커머스 플랫폼) 확산에 따라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제품의 직구(직접 구매) 접근성이 좋아지자 ‘국내 가전 시장 판도가 바뀔 수도 있다’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전자레인지·헤어드라이어·로봇청소기 등 비교적 한정적인 제품군에서만 강세를 보였던 중국 가전이 냉장고·세탁기 등 전 영역으로 확산할 수 있단 견해다.
국내 가전 시장을 사실상 양분하고 있는 삼성전자·LG전자는 이에 대응해 중국 시장 진출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중국 제조사가 국내 시장 공략에 ‘가성비’를 내세웠다면, 삼성전자·LG전자는 ‘맞춤형·프리미엄’을 키워드로 꼽은 모양새다. 기술력에 기반한 높은 품질을 토대로 중국 소비자를 홀리겠단 취지다. 특히 일부 제품에는 중국 가옥 양식을 반영해 크기를 조율하는 식의 접근도 이뤄지고 있다.
韓 가전, 17년간 참패
두 국가 사이 가전 산업 경쟁에서 한국은 최근 17년간 내리 졌다. 한국무역협회 등에 따르면 대(對)중국 가전제품 무역수지는 2007년 적자 전환됐고, 2023년까지 흑자로 돌아서지 못한 상태다. 반등은커녕 되레 적자 규모가 커지고 있다. 2023년 중국을 대상으로 한 가전제품 무역 적자는 41억213만 달러, 한국 돈으로 5조6300억원에 달한다. 적자 폭은 10년 전과 비교해 7.8배 증가했다.
중국으로 수출하는 한국 가전은 적은데, 한국으로 수입되는 중국 가전은 많다는 의미다. 한국은 중국 가전을 2023년에 45억3571만 달러, 한국 돈으로 약 6조2190억원치 사들였다. 2013년과 비교하면 중국 가전 수입액은 1.9배 증가했다. 양국의 인구 차이를 고려하면 참패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LG전자가 미국·유럽 등 프리미엄 가전 시장은 물론 인도·동남아시아와 같은 신흥 시장도 점령하고 있지만 중국에서만큼은 맥을 못 추고 있다”며 “품질이 높더라도 가격이 비싸 한국 가전을 구매할 수 있는 중국 소비층이 한정적인 데다, 중국 특유의 ‘궈차오’(国潮·애국 소비)도 걸림돌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이얼·메이디·하이센스·거리·거란스는 물론 화웨이·샤오미 등 현지 기업의 높은 내수 시장 장악력도 국내 기업 진출을 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현지 기업이 세탁기·냉장고·건조기 등 주요 제품 영역을 80~90% 점유하고 있어 사실상 경쟁이 어렵단 분석이다. 업계에선 삼성전자·LG전자의 중국 가전 시장 점유율을 1~2% 안팎이라고 본다. 두 기업이 2023년 미국 가전 시장에서 나란히 1, 2위를 차지한 점과 사뭇 대조된다. 시장조사업체 트랙라인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 기간 미국 생활가전 시장에서 매출 기준 점유율 21%를 기록했고, LG전자는 19%를 차지했다.
C-커머스 올라탄 중국 가전
국내 가전 시장 중 특히 로봇 청소기 분야는 사실상 중국 업체가 제패했다. 2023년 기준 국내 로봇 청소기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은 35%의 로보락이다. 에코백스 역시 13%로 높은 점유율을 보인다. 국내서 판매된 로봇 청소기 절반이 중국산인 셈이다.
특히 로보락이 최근 국내서 보인 성과는 업계에 반향을 일으켰다. 150만원 이상의 하이엔드(고급) 제품 시장 점유율이 80.5%로 집계됐기 때문이다. ‘한국 소비자는 중국 제품을 가성비 때문에 산다’는 가전업계의 일반적인 인식을 뒤엎는 결과다.
로봇 청소기 시장은 삼성전자·LG전자 역시 일찍이 진출한 분야다. 로보락은 그런데도 삼성전자·LG전자 안방에서 1위 자리를 거머쥐었다. 심지어 로보락은 올해 내놓은 프리미엄급 신제품의 국내 가격(로보락 S8 맥스V 울트라·184만원)을 삼성전자(비스포크 AI 스팀·179만원)·LG전자(LG 코드제로 오브제컬렉션 R9·159만원)보다 높게 책정하는 배짱도 부렸다. 업계에선 이를 두고 “가격 경쟁력에서 뒤져도 품질로 승부를 볼 정도로 자신이 있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로보락은 해외 기업의 약점으로 꼽히는 사후관리 서비스(AS)를 강화하고, 제품군도 세탁건조기로 넓히는 등 국내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로보락과 같은 사례가 대다수 가전 제품군에서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C-커머스 확산에 따라 중국 가전을 국내에서 쉽고 빠르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데이터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의 ‘마케팅클라우드 리포트’에 따르면 최근 알리익스프레스(이하 알리)∙테무의 국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확산이 뚜렷하게 전개되고 있다. 올해 3월 알리 앱의 신규 설치 수는 약 116만 건으로 집계됐다. 테무 역시 이 기간 약 293만 건이 설치됐다.
업계에선 경향성에 주목한다. 알리 신규 설치 수는 2023년 ▲9월 59만 건 ▲10월 82만 건 ▲11월 96만 건 ▲12월 68만 건을 기록했다. 올해 1월과 2월에는 각각 60만 건, 109만 건을 기록했다. 월마다 편차는 있지만 신규 설치 수가 우상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3월 알리의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694만 명 수준으로 집계됐다. 1년 전 MAU(328만 명)와 비교해 2배 이상 증가했다.
한국 시장에 비교적 늦게 진출한 테무 역시 최근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23년 4월까지만 하더라도 신규 설치 수가 813건에 불과했으나, 같은 해 9월 129만 건으로 급증했다. 2023년 12월(208만 건)과 올해 1월(222만 건) 연속으로 200만 건을 넘어서기도 했다. 이에 따라 테무의 3월 MAU는 636만 명으로 성장했다. 11개월 전과 비교하면 무려 945배 상승한 수치다.
C-커머스의 국내 확산은 중국 가전 기업에도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하는 구조다. 현지 판매 가격을 국내 소비자가 직접 보고 구매한다는 건 강력한 신규 수요 창출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알리를 통해 중국산 전자레인지를 구매한 A 씨(28세)는 “전자레인지 품질은 중국이라고 해서 크게 차이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며 “동급 국내 제품과 적게는 5만원, 많게는 10만원 정도 차이가 나 구매한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LG전자는 이런 시장 변화에 대응해 중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양사는 지난 3월 중국 상하이에서 개최된 글로벌 3대 가전·전자 산업 박람회 ‘AWE(Appliance & Electronics World Expo) 2024’에 나란히 참가, 중국 시장 맞춤형 제품을 선보였다. 특히 삼성전자는 중국 현지 가옥과 생활양식에 맞춘 비스포크 냉장고·세탁기 신제품을 전면에 세웠다. LG전자 역시 중국 시장에서 인기를 끄는 ‘올 뉴 스타일러’를 내세웠다. LG전자는 최근 중국 최대 온라인 가전 유통사 징동과 협업하는 등 현지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류재철 LG전자 H&A사업본부장(사장)은 최근 ‘이탈리아 밀라노 디자인위크·유로쿠치나 2024’에서 열린 기자간담회를 통해 경쟁자로 중국 기업 하이얼을 꼽기도 했다. 그는 “하이얼을 가장 눈여겨서 보는 중”이라며 “하이얼은 좋은 제품을 경쟁사보다 빠르게 시장에 진입시키는 ‘타임 투 마켓’ 전략을 펼치고 있다는 관점에서 경계해야 할 1번 경쟁자”라고 말했다.
ⓒ 이코노미스트. All rights reserved.
많이 본 뉴스
1유마인코리아의 유마인K, 2024 글로벌 인플루언서 엑스포 부스 입점
2WE하다-코틱스 코퍼레이션, 글로벌 인플루언서 엑스포서 장애인 근로 캠페인 협업
3테슬라, 中 주간 판매 최고 기록 경신…매출 지속 성장
4GTX-A노선 ‘운정중앙-서울역’ 구간 28일 개통
5바오연대네트워크, 中대사관 성명서 전달...“푸바오 건강 회복”
6고용률 ‘역대 최대’ 속 건설·제조업 고용 찬 바람
7'트럼프 식 패스트트랙'...미국에 10억달러 이상 투자하면 '완전 신속' 허가
8 경찰, 대통령실 압수수색 종료…경호처 저지에 진입 실패
9최태원 차녀 최민정, 美 보험사 대표 총격에 “의료 체계 변화해야”